▶ 글 내 용

작성자
양철곤
게시일
2009-08-15 오후 1:16:45
제 목
양희인 일가의 청주, 안악, 중화 합보의 변절이라는데 대한 답변
내 용
우선 씨족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각종 문헌조사와 검토를 하고 게신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합보하거나 입보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는 후손들이 모두 한 시조님의 후손으로 알고 모신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의 생각이 잘못되었는지요 ? 본인의 생각이 맞는다면 관향을 대동보를 만들 때마다 청주, 안악, 중화, 밀양(그 외도 7개 이상) 등을 족보마다에 표시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관향은 한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할 때 편의상 붙여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아무튼 일가가 지적하신 내용은 "청주, 안악, 중화 합보"라는 용어가 그 다음 족보에서는 "청주연혁"이라는 용어로 대치된 점을 지적하였는데, 이는 우리 시조님께서 벽상삼한창국공신, 상당백으로 봉해졌고, 관향을 청주로 하사받으셨는데 여기 상당백에서 상당이라는 뜻을 설명하는 외의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놓고 변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좀 지나친 표현이라 생각되네요. 또한 차제에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고 싶은데, 일가의 게시문에 "포 선조님은 우리 시조님(휘 : 기)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단정적인 글을 올린데 대하여 본인이 확증할 수 없는 처지에서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한가지 알고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 시조님과 부자의 관계가 아니라면 포 선조님께서도 분명히 아번님, 할아번님 등 그 선계가 있으셨을 것이니 그 선계 분들이 누구 누구이시고 어데 사셨으며, 무엇을 하셨던 분들인가를 설명하여 주는 편이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포 선조님이 어떠한 사연으로 나라에서 사성되고, 관향이 중화나 또는 안악으로 정해졌는지도 알고 싶네요. 본인이 듣기로는 그 가문에 가승보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는데, 가승보라도 보고 같이 검토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리라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