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철곤
게시일
2009-08-29 오전 1:09:16
제 목
희인 일가 분에게 당부드립니다
내 용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데는, 우선 읽어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금한 점이 없이, 글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동안 올리신 많은 글 중 두 가지만 예로 들어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조심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1. 2009. 8. 28 오전 11경에 올린 글 “변의문”에 대하여

이 글은 희인 일가께서 직접 지으신 글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응당 언제 누가 지은 글이고, 언제 어디에 실린 글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 거두절미하고 제목만 “변의문”이라 붙여 소개함은 결례라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내용은 우리 청주양씨 족보의 충헌공 상당백 행장에 충정왕(忠定王)이라고 쓰였어야할 것이 충선왕(忠宣王)이라고 오기된 점을 들어 별의별 소리를 다하였는데, 이는 본인이 이미 오기(誤記)된 것이라 알린 바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래부분
“비처(鄙處)에 根本唐岳君을 始祖삼은 보첩(譜牒)이 있고, 당악군의 子가 東茂요 동무의 次子가 원석(元檡)이요 원석의 子가 起인 바 上黨을 封하야 松禾를 食하는 ---” 하였는데, 이 보첩은 희인 일가가 글을 백번 올리는 것 보다 효과가 큰 자료라 생각됩니다. 여기서 남의 글을 올리면서 중요한 부분을 고의적으로 뺀 것인지 아니면 잘못적은 것이라 보고 뺀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본인이 알고 있기로는 변의문이 실려 있는 1969년도 간행 중화양씨족보에는 世系가 浦 - 東茂 - 基 - 伯厚 - 元檡 - 起 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이 잘못 본 것일까요 ? 基 선조와 伯厚 선조님이 출계(出系)한 것도 아닐 터인데, 남의 글도 분명히 옮겨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리고 元檡의 子로 적혀있는 起라는 분도 1766년 간행된 청주양씨 족보에도 없고, 1798년 간행 中和楊氏 족보에도 분명히 없었던 人物인데, 그 분이 바로 淸州楊氏 始祖이고 따라서 청주양씨는 중화양씨의 분파라는 점을 강조하기위하여 系子(혹는 養子)로 만들어 넣은 것입니까 ?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입니까 ? 이에 대한 근거도 궁금한 일입니다.
다음은 高麗史나 高麗史節要를 들기 전에 상식적으로 판단해 볼 문제인데, 만약 元檡의 子로 起라는 분이 있었다면 중화양씨 6世에 해당하고, 大峰公은 8世에 해당하여 祖孫之間의 항렬인데, 대봉공께서 이러한 起라는 인물을 몰라보고, 그의 행장에 起가 始祖이고 그 아들이 浦라고 한 내용을 그대로 보아 넘기셨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2. 2009. 8. 15 게시판에 올린 “봉래사언수보작서”에 대하여 희인 일가께서는 지난 8월 15일 게시판에 丙戌譜凡例(1766)에 관하여 原文(漢字 : 희인 일가가 게시한 내용문 참조)을 그대로 옮겨 놓고, 그 밑에 친절하게도 일가께서 해설을 달아놓으셨는데, 해설내용이 原文의 진의에 부합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본인이 직접 이 原文을 漢學에 조예가 깊은 學者에게 의뢰하여 해석한 글을 받아 아래와 같이 올린 것입니다. 본인이 보기에는 일가께서 덧붙인 해설의 의미와 原文의 진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희인 일가의 해설문 내용(그대로 옮긴 것임) :
“오랜 시간속에서 淸州와 中和가 많은 갈등을 격어왔기 때문에 양쪽의 일족이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음을 수백년에 걸처서 지금까지 이르서 문제를 추후에 양가가 빨리 해결 할 수 있도록바란다.”

같은 原文에 대하여 의뢰 받은 漢學者의 번역 내용.
“우리 양씨는 중국으로부터 건너와 高麗朝에서 현달(顯達)하기 시작하여 名望이 높은 벌족(閥族)이 되었다. 그러나 보첩의 전지(傳誌)만으로는 아득한 옛일을 낱낱이 징험(徵驗)하거나 확인할 수 없다.
조선시대 봉래(蓬萊) 楊士彦이 보첩을 새로 만들고 서문을 지었다. 그 뒤로 庚午(1690)年에 부사(府使) 양헌석(楊憲奭)이 見聞을 부구수집(敷求蒐集)하여 姓譜一卷을 만들었는데 그 기록을 살펴보면 소략(疏略)한 부분이 많아 보는 사람들이 흡족해 하지 않는다. 또한 이 보첩을 만든 지가 어느덧 77년이 지났으니, 참으로 한 世代마다 보첩을 증수(增修)하여 譜系를 밝히고 宗族을 수록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반드시 골육지친(骨肉之親)의 계통(系統)이 없어지고 우리가 온 곳인 그 뿌리를 알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리니 이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미리미리 원근종파(遠近宗派)를 수록하고 제가(諸家)의 보첩기록(譜牒記錄)을 널리 고찰하여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누락된 것은 보완하여 완전한 보첩을 만들어야할 것이다. 外家는 曾祖까지, 출가한 사람은 孫子까지 등재해야 한다.“

위의 글에서 잘 보셨듯이 이 좋은 글의 내용을 두고, 희인 일가께서는 淸州와 中和가 갈등을 겪어왔네, 양쪽의 일족이 이견(異見)을 수 백년 동안 이어왔네 하는 등의 무슨 터무니없는 해설을 하며, 누구한테 무슨 고견을 듣자는 것입니까 ?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도 큰 병이라는 말씀만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부 드립니다. 이러한 글은 淸州楊氏 게시판에 올리지 말고, 中和楊氏 게시판에나 올려 論議해 보시고, 의견이 수렴되면 중화양씨 대표께서 청주양씨 대종회장 앞으로 문서로 보내도록 하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 차제에 淸州楊氏 大宗會 執行部에 建議합니다.
앞으로 유념하여 청주양씨가 아닌 사람의 글은 일체 게시 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해 줄 것을 建議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