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희인
게시일
2012-03-19 오후 12:13:54
제 목
청주양씨에대한 의견(문정우님께)
내 용
>楊起와 그의 家系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高麗史」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氏族源流」에 그 선대가 간략하게나마 나타나는데, 그에 의하면 楊起는 대대로 元에 살다가 충렬왕 때 齊國大長公主를 따라 고려에 온 怯怜口로 파악된다. 그는 淸州 韓氏와 결혼하면서 妻의 故鄕인 淸州를 本貫으로 하게 되었다. 楊起는 4男 1女를 두었는데, 楊成柱는 그의 장남이며, 공민왕 때 興王寺의 亂을 평정하여 1등공신에 책봉된 楊伯淵은 그의 손자임을 알 수 있다. 「高麗史」 권114, 列傳 27 楊伯淵傳 및 「氏族源流」, p.695 淸州 楊氏條 참조
>위 글은 김혜원교수의 이대박사학위논문-고려후기심왕연구-에서 p77 주석에 기록된 글입니다
>위 기록들을 유추해보면 지금 청주양씨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楊起의 출생기록은 12**년대로 상향 조정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아마 황희문집에기록된 楊起행장을 참조하여 출생년도를 설정하신 것 같은데 다소 의문이 듭니다
>문정우님 글잘보았습니다.
문정우님의 글에 대한 저의 생각도 같습니다. 문정우님이 지적하신 청주양씨의 시조님 기[起]의 기록에 대하여 저도 여러 문헌을 살펴본 결과 같은 의견입니다.
첫째...고려사에 양기의 가족의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고려충숙왕9년[1322]에 고려 심왕[충선왕]의 명으로 원나라에 갈때에 양기[起]는 상호군으로 이겸[謙]과 함께 같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둘째... 고려사절요 제24권 고려충숙왕9년[1322]에 양기의 아들인 양성주 또한 고려 심왕[충선왕]의 신하였다는 기록입니다.양기와 양성주가 고려 심왕의 시하로 원나라에 정착하여 있다가 후일 제국대장공주을 배향하여 동해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그러나 청주양씨의 주장은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를 배향하여 동래하였다고 주장함] 양기는 중국인이 아니라 고려인임을 잘알수 있습니다.
셋째...양기[起]의 자손의 기록은 문정우님의 으견과[4남1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주양씨의 세보속에 중화양씨의 시조님 양포[浦]의 기록을 살펴보면 청주양씨 병술보[1766]부터 정유보[1957]에 수록된 양포[浦]와 양동무[東茂]의 사적및 손록보면 알수 있습니다. 당악군사실[ 公諱浦高麗高宗時政丞封唐岳君仕中朝爲龍虎衛上將軍高麗高宗元年甲戌卽宋寧宗嘉定七年甲戌也昭載麗史]와 상서공사실[吏部尙書諫義大夫庚牛九月與金方慶討珍島賊有功]등으로 기록되여 있다.위와 가수록되여 있는데도 청주양씨는 중화양씨 시조님 浦를 양기의 6자로 기록한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청주양씨 시조님 [起]기보다 중화양씨 시조님 [浦]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중화양씨 포의 장자인 양동무와도 많은 연대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화양씨를 천주양씨에 예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청주양씨의 시조 起[기]의 생몰연대의 의문점입니다. 물론 청주양씨는 황희의 문집에서 발취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려사속에 있는 상호군 양기의 기록을 인정하면서 왜 그렇게 하여야 했느냐는 점입니다. 저또한 양기의 생연대 1285년 이전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저는 청주양씨의 보서의 제작년도 보는 바 양사언이 수보했다는 1570[경오보]와 양현석이 수보한 1690[경오]보에는 양포와 양근의 기록이 없다는 점과 1766[병술보]와1957[정유]보에 양포[浦]와 양근[根]이 등장 한다는 점입니다.
문정우님의 견해와 저의 견해가 같은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됩니다. 저와 중화양씨에 대한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건강을 기원합니다.
문정우님 제가 운영하는 중화양씨 청주홈피입니다. 많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http://y4648479.cafe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