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희인
게시일
2012-03-20 오후 12:58:36
제 목
노국대장공주를 배종한 인물
내 용
@@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 될수 있다 또 오랜 시간 속에서 노국대장공주의 배양인물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늘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이 지금 이순간이 아닌가 한다. 또한 청주양씨의 오랜 배일에 싸여 있는 문제점이 밝혀지는 순간이다.이글은 一德이라는 역사학자가 올려[20101년10월8일] 놓은 글을 그대로 옮긴것입니다.@@

@@@ 노국대장공주의 배종인물 @@@
노국대장공주는 元나라의 황족인 위왕의 딸로써, 이름은 보탑실리고, 고려식 이름은 공민왕의 성을 따라 王佳珍[왕가진] 이라고하였다.
1349[고려충정왕1년] 元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여 고려의 왕비가 되었고, 공민왕이 반원정펴자 고국을 배반하고 적극 공민왕편에 서서, 공민왕의 사랑을 받았다. 사후에도 공민왕은 초상화를 벽에 걸고 매우 슬퍼했다 한다. 그 노국공주를 배송한 인물들을 보면

공소[孔紹]는 공자의 52세손으로 고려에 들어와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고 창원이 관향을 받았으나 정조때 공자의 고향인, 곡부로 개관하였다. 공자탄생2556주년을 맞아 후손을 조사하니 전세계에 약300만명이 집계되었는데, 중국본토가 250만명이고, 홍콩,대만,외에,한국,미국,마레시아,싱가포르순이다. 곡부공씨[7만5첨명]등 한국의 공씨는 8만5천명이다.
안만세[安萬世]는 중국 太原출신으로 동래에 정착해,중국 태원을 본관으로 1.400명의 후손이 있고,
정사조[程思祖]는 程顯의 후손으로 중국 하남정씨와 동류라 같은 본관으로 8.000명의 후손이,
전유겸[錢惟謙]은 동래하여 최영장군의 누이와 혼인하여 문정전씨[6,000몀]의 시조가 되고
감규[甘揆]는 회산감씨[2.200명]의 시조가 되고
음준[陰俊]은 죽산음씨[3.000명]의 시조가 되고
노은경[路誾儆]은 개성노씨[1.600명]의 시조가 되고
팽적[彭적]은 용강팽씨ㄱ[800명]의 시조가 되고
서기문[西門記]는 안음서문씨[2.000명]의 시조가 되고
방두현[龐斗賢은 개성방씨[900명]의 시조가 되었다.
그외 홍주皮씨[1.200명],청주左씨2.700명],보성宣씨[3만5천명],서촉明씨[2만5천명],청주史씨[8.00명],수안柱씨[7.000명].밀양唐씨[1.000명]등은 고려말에 태원金씨[2.500명],광천董씨[4.000명]등은 조선초에 귀화 하였다.
@@@위에 기록된 노국대장공주를 배종한 인물로 10인 있다. 그들은 고려말에 노국대장공주를 배종하여 왔다는 청주양씨의 楊起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다음에 수록할 제국대장공주의 배종인물에는 청주양씨의 시조 양기[楊起]가 두번째인물로 기록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