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철곤
게시일
2009-07-25 오전 12:26:52
제 목
양병렬 일가의 의문에 관한 답
내 용
충헌공 시조님의 행장에 들어있는 내용 중 일부가 방촌선생의 생존기간을 고려할 때, 들어갈 수 없는 내용, 즉 백연선조님의 운봉전투의 전승비 건이 어떻게 쓰여질 수 있느냐 하는 점 잘 지적하여 주셨읍니다. 실은 이조실록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성강 전투나 진주 반성현 전투에서의 승전에 관한 내용은 나오는데, 운봉전투에 참전하셔 대승을 거수셨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읍니다. 이는 다만 선조 34년(1601년) 수교문 내용에 "양윤항의 일은 군보로서는 불가하다"는 대목의 사유에서 상당백 양기는 중국사람이나 동국에 공훈이 크고, 그 손자 백연은 도지휘사로서 운봉전투를 승전으로 이끄는데 큰 공이 있고, 그 증손 치는 병사로서 육진을 개척하는데 큰 공이 있었음을 지적한 내용에서 백연 선조님이 운봉전투에 참전하셔서 공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적하신대로 선조 10년(1677년)에 세운 전승비가 어떻게 황희 정승이 쓰신 충헌공의 행장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좀 비략이른지는 몰라도 첫째는 승전 당시 대충 허술하게 세워진 전승비를 약 200여년 뒤에 큰 공을 감안하여 정식으로 나라애서 승전비를 만들어 다시 세울 수도 있었다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방촌문집이 방촌선생 생전에 간행된 것이 아니고, 제가 알고 있기로는 헌종 무신(1848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간행하면서 특기할만한 내용을 후학들이 추가했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더 연구 검토해 보아야 할 사항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충헌공 시조님의 탄생 년대는 별로 문제가 없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이는 충헌공 행장 발을 쓰신 당대의 조준 영의정, 충헌공 화상찬을 쓰신 정탁 우의정, 충헌공의 송화 수증사 봉안문을 쓰신 하륜 영의정, 태종대왕의 어사제문, 춘추향사문을 쓰신 남재 좌의정 등은 모두 한 시대를 같이 살으셨던 인물들입니다. 이러한 분들이 쓰신 모든 내용등을 감안할 때 의문의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22세 철곤 (031-347-6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