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희인
게시일
2009-08-14 오후 7:13:34
제 목
청주양씨 시조님 起는 중화양씨
내 용
청주양씨경술보(1850)의 범례을 옴겨 수록하면서 그뜻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庚戌譜新增凡例 始祖以淸州爲貫而及其子孫或仍移封各隨其邑或貫安岳密陽中和然究其本則一也自今譜後以此呈禮曹以淸州還貫耳(경술보시증범례 시조이청주위관이급기자손혹잉이봉각수기읍혹관안악밀양중화연구기본칙일야자금보후이차정예조이청주환관이) 과연 청주양씨 시조이신 기가 중국에서 동래하여 청주로 본관을 정하였으면 위의 경자보신증범례속에 안악, 밀양.중화등이 거론되고 있음은 전자에 올려 놓은 청주,안악,중화의 합보를 의미 합니다. 그러나 후일 청주로 합관으로 함에 있어서 큰 실수를 범하였다고 사료됨니다. 또한 禮曹(예조)는 중화양씨 시조 浦의 5세손 元植을 이야기 함과 중화양씨 평양파보속에 수록된 元釋의 자가 起가 수록되여있고 추후 병술보(1677)의 범례의 기록을 살펴보면 唐岳君派誤錄於丙戌譜景安公派矣今則收單時依其來單改錄於唐岳君派以正其本系耳(당악군파오록어병술보경안공파의금칙수단시의기래단개록어당악군파이정기본계이)의 수록으로보아 청주양씨는 중화양씨에서 분파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경안공(天震)은 청주양씨 시조 起의 3세손이다. 청주양씨 1987년도 족보의 수록되여 있어야 할 기록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하지 아니할수없다. 후일 譜書를 편찬시에는 선조님이 남겨 놓은 기록을 빠짐없이 수록하여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