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희인
게시일
2009-08-15 오후 7:04:02
제 목
중화와청주양씨보서속의 양동무소개
내 용
이글은 중화양씨 시조 浦의 이해를 돕고자 실른 글입니다.
1.中和譜(1981)-吏部尙書諫義大夫 高麗元宗庚牛九月與金方慶高汝霖等討珍島賊裵仲孫十二月賊以航圍之驅迫公以蒙衝擊救之賊乃解居事載東國通鑑高麗記(이부상서간의대부 고려고종경우구월여김방경고여림등토진도적배종손십이월적이항위지구박공이몽충격구지적내해거사재동국통감고려기)
2.淸州譜(1957)-吏部尙書諫義大夫庚牛九月與金方慶討珍島賊有功(이부상서간의대부경우구월여김방경토진도적유공)
상기 위의 기록이 같다.그리하여 아래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을 보충하여 이해를 돕고합니다.
3.高麗史-고려 원종11년(庚牛1270)-辛丑將軍楊東茂高汝霖等以舟師討珍島賊入長興府殺京卒二十餘人擒都領尹萬藏剽掠財穀王遣使安撫(신축장군양동무고여림등이주사토진도적입장흥부살경졸이십여인금도령윤만장표략재곡왕견사안무)
主解-신축일에 장군 양동무.고여림등이 배를 타고 진도를 토벌하니 적들이 장흥부에 들어가 경졸20여 명을 죽이고 도령 윤만장을 사로잡았으며 재물과 양곡을 약탈했으므로 황이 사신을 보내 백성을 안무했다.
4.高麗史-고려 원종11년(庚牛1270)-丁巳金方慶與賊戰于珍島阿海怯懦不戰賊爲方慶將軍楊東茂救解爲去(정사김방경여적전우진도아해겁나불전적위방경장군양동무구해위거)
主解-정사일에 김방경이 적들과 진도에서 싸웠다.아해는 겁을 먹고 싸우지 않았다. 적들이 김방경을 포위하자 장군 양동무가 구원해 주니적들를 풀고 갔다.
5.상기 위에 기록을 살피건대 고려사와 보서가 일치함이다. 이는 중화보와 청주보가 양동무의 기록이 일치하고 있음이 큰 의미를 준다. 양동무의 연대를 가늠하면 고려원종(1260-1274)을보위하고 있음과 양동무가 고여림,김방경등과 함께 하는 공적(1270)이다. 그럼 청주양씨의 시조인 起(1303-1394)의 보서의 기록이다. 청주양씨의 시조 기가 손자로 기록한 동무의 나이 차이가 있음이다. 고로 청주양씨보서속의 포의 현손은 청주양씨가 아님을 증명한다.왜 이러한 착오가 발생한것인가 하는가다. ..이란 사람이 자신의 부와 명예을 위하여 저지른 일이기에 참으로 원통하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이글 이전에 어느분의 글속에 숨은 의미를 취하고자 한다. 일족님들여 이글을 보고 시원한 답을 주시길 간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