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희인
게시일
2009-08-19 오전 10:41:49
제 목
청주보속의 범례
내 용
1.始祖께서 淸州로 本貫을 받으셨는데 後世 子孫代에 이르러 각각 封邑에 으하여 鄕貫을 安岳,密城,中和,南原으로 呼稱하나 그 本原은 같다. 丁卯譜 이후로는 安岳,密城은 合譜하였으며 丁卯修譜 때부터는 中和도 合譜하였다.
2.이글은 청주양씨 1987년도 족보속에 기록되여 있는 범례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긴것이다. 글속에는 합보(合譜)리는 단어가 수록되여 있다. 본인이 이전에 기록한 범례내용에는 합관(合貫)으로 수록되여 있다는 것이 다르다.특히 丁卯譜(1807)에 安岳,密城을 合譜를 하였다고 기록되여 있다 그후 丁卯修譜에 中和도 合譜를 하였다고 한다. 또 각각 封邑에 의하여 본관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특히 안악,밀성,중화.남원의 4개의 본관이 있으나 남원을 제외한 3개의 본관이 합보를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현존하는 보서는 안악을 제외한 2개의 본관이 합보되여 있다. 물론 密城의 시조는 根(근)이고 中和의 시조는 浦(포)이다.다시한번 상기하면 楊(양) 나무목이 들어간 버들양의 합보을 말하는것이다. 왜 우리의 시조 浦가 淸州楊氏의 시조 起의 아들이냐는 것이다. 청주양씨의 시조보다도 연세가 100세이상 넘는 우리의 시조님이 왜 무엇이 아쉬워서 그리하겠는가? 지금 청주양씨의 보서에서 거론이 되듯이 그냥 合譜(합보)여야 하는데 이를 合貫(합관)으로 많들어서 中和楊氏 시조 浦를 淸州楊氏 시조 起의 아들로 입적하였다는 것이다. 분명 보서를 만들고자하며 검토하여 순위를 정함이 오른데 졸속으로 중화양씨의 보서를 그냥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이야기다. 또 청주양씨 양사언의 후손이 수보작 참여하며 쓴글을 읽어보면 참으로 통탄하였다는 글있다.(참고 봉래 양사언 수보작 글을 참고바람) 과연 系派의 자손이 수보작에 참석하여 많들고 宗家는 이에 참석하지 아니 하여서 그렇다.왜 극히 문맹인의 시대에 이를 수보하고 박학다식한 자는 이를 운용하여 이득을 챙기는 일이 다분하였다고 판단한다. 고로 우리 中和楊氏의 顯孫은 앞으로 淸州譜書에 合譜할수 없고 이전의 수록된 보서의 내용을 삭제하도록 노력할것입니다. 양쪽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