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철수
게시일
2011-05-15 오전 2:31:58
제 목
혜빈양씨에 관한 글입니다
내 용
단종의 아보[保育人] 혜빈 양씨(楊氏)
양씨(楊氏)는 청주양씨로서 현감 경(景)의 딸이며 찬성사(贊成事) 지수(之壽)의 증손녀이다.
세종대왕 때 후궁으로 뽑혀 입궁하여 혜빈(惠嬪)에 봉해졌다. 혜빈은 한남군 어(王於), 수춘군 현(玹), 영풍군 천(?) 등 3남을 두었다.
1441년(세종 23) 세자빈 권씨(權氏)가 단종대왕을 동궁에서 낳고 이튿날 승하하자 세종대왕은 궁중에서 어진 이로 혜빈을 선택하여 아보(阿保)로 원손(元孫)을 보양하도록 명하였다. 혜빈은 기출의 3왕자와 함께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보호하고 음식과 기거를 지성스럽게 섬기었다.
세종 · 문종대왕이 연이어 승하하고 단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종실의 영걸(英傑)들이 포진하고 있어 국세가 위태로웠을 때 혜빈이 옥체를 편안하게 호위하여 극진히 봉양했다.
1455년 윤6월 11일 수양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을 때에 피화되었다.
장남 한남군은 귀양가서 순절하고 차남 수춘군은 이보다 앞서 순의(殉義)하였다. 3남 영풍군은 함께 당하여 4모자가 똑같이 의롭게 생을 마치었다.
혜빈의 유해는 빈의 종조부 병사공 양치(楊治)가 남몰래 거둬다가 포천(抱川) 기당리(機唐里) 세장산에 묻고 평토를 하여 극비에 붙였다.
이러한 내력은 단종대왕의 누님 경혜공주의 한글 수기로 전해 진다.
1713년(숙종 39)에 왕명으로 `혜빈의 묘를 봉분하라' 하였으나 장소를 찾지 못하였다. 1900년(광무 4) 수춘군 파종회에서 고양군 원당에 단을 축조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1791년(정조 15)에 혜빈의 시호를 추증하며 `민정(愍貞)'이라 하였다.
임금은 유문(侑文)을 만들어 말하기를 “슬프다. 오직 양씨(楊氏)는 옛적의 아보(阿保)와 같다. 칭송은 주빈(周嬪)처럼 드러나고 공(功)은 한모(漢母)보다 고매한데 병자 정축년을 맞이하여 화가 후궁에 미치었다. 두 아들과 같이 죽었으니 6신들과 같이 돌아갔구나. 시대는 달라도 방모와 같고 여자로서 굳세고 인자하였다. 두견새는 옛 누각에서 우는데 봄은 신단(新壇)에 다시 찾아왔구나. 의는 천추에 일어나기에 예로써 제현(諸賢)과 강신(降神)의 잔을 드린다. 생각컨대 6궁에서 제일 높았는데 어찌 제사를 똑같이 한단 말인가. 지난 일을 감히 말하자니 슬픈 감회가 지극히 깊고 깊구나. 예를 거행하여 이름을 바꾸어 `민정(愍貞)'이라 한다.”하였다.
임금은 제물을 드리며 이르기를 “내가 진심으로 내려주는 것이며 법도를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이에 명을 내려 현판을 만들게 하고 제사를 오래 이어가도록 한다. 일이 이 때를 기다린 것 같고 이 보은은 실로 선왕 때부터 있었던 터이다. 관(官)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성스레 모시도록 하였으니 바라건대 이 제물을 흠향하소서.” 또한 시호를 한남군에게는 `정도(貞悼)'라 하였으며 영풍군은 `정열(貞烈)'이라 하고 장릉 충신단에 배향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