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 용

작성자
양철곤
게시일
2019-03-06 오전 11:31:52
제 목
양필선 일가가 올린 글을 보고
내 용
우리 시조님이신 충헌공께서 공민왕비인 노국대장공주를 배종하여 우리나라에 오신 것은 사실이나, 그 뒤 아무런 조건 없이 청주에 사시게된 것만으로 청주 양씨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 봅니다. 시조님께서는 우리나라에 오신 후 공민왕의 배려로 정승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아 왕을 보좌하면서 당시 우리나라의 큰 적폐였던 세공(동녀 5천명, 말 3만필, 비단 3만동 및 백저 6만필 등)을 삭감하는데 크게 기여함으로서 나라에 여력이 생기고, 백성들은 재산을 모으게 되어 풍속이 순화해 졌고, 예법을 갖추게 되어 완연히 태평성세가 되었으며,그 때의 나라 다스리는 방법 모두를 중국의 제도에 따랐으므로 예악과 문물을 삼대(하, 은, 주)의 성대했던 시대로 되돌아가게 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신 공로 등으로, 나라에서는 벽상삼한창국공신, 청백리 및 상당백을 봉하고, 청주 해주 및 송화등지를 식읍토록 하게하는 한편 본관을 청주로 하사하여 청주양씨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더 소상히 알고싶으시면 우리 대동보에서 충헌공 행장을 살펴보시기 바람니다. 그리고 귀 일가께서는 충남연기군이 출생지이고, 거기에는 당악군파 종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당악군파로 알고계신 것 같은데, 본인이 당악군파의 족보 내용을 대충 본바로는 당악군파 종인들 중에는 20세, 21세 및 22세들이 정확히 치, 석 및 철자 등의 돌림자(항렬자)를 쓴 경우의 종인이 거의 없음을 볼 때, 귀 일가는 당악군파 종인이 아닌듯 십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