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군파 역시 천도시 한양으로 옮겨와 살다가 양혜빈의 수난을 계기로 남ㆍ북으로 이산(離散)하게 되었는데, 장ㆍ차남 흥립(興立), 흥야(興野)의 후손은 함경도 함흥과 황해도 평산, 안악, 송화 지방에 많이 살고 있으며, 3남 첨식(添植)의 후손 중 효지(孝智) 정간공(靖簡公)의 직계손은 경북 영천군 화남면 일대에 3백여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중이며, 4남 천진(天震) 경안공(景安公)의 후손은 가장 번창하여, 남ㆍ북 각지에 수천호가 분포 되어 있다.
경안공의 큰아들 배(培) 귀암공(歸庵公 )의 제1남 계원(繼元) 병사공(兵使公)의 후손은 경주 주변과 영천군 북안면 명주동 근처와 영일군 신광면 냉수동에 수십호씩 산거(散居) 하고 있으며, 함흥 지방에 2백여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제2남 계동(繼童) 부사공(府使公)의 후예는 경주, 광양 및 칠곡 지방에 영주하고 있으며, 전남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 칠동 근교에 3백여호 집성촌을 이루고 4백여년 간 세거하고 있고, 제3남 계종(繼宗) 사정공(司正公의 후손도 경주 근교 및 영천에 살고 있다.
경안공의 둘째아들 수(脩) 부윤공(府尹公) 후손은 충남서천 지방에 누대로 세거 중이며, 셋째아들 혁(赫) 목사공(牧使公)의 후손은 평북 영변에 정주(定住)하고 있고,넷째아들 억(億) 주서공(主書公)의 후손은 충남 은진, 금산 및 예산 지방에 근 5백여년 동안 세거하고 있다.
경안공의 다섯째아들 치(治) 함길,황해 양도병마절도사咸吉,黃海 兩道兵馬節度使 퇴은공(退隱公)의 후손이 수천호에 이르는데, 제 1남 순달(順達) 교리공(校理公)의 후손은 경기도 연천, 양주, 충남 천안 지방에 세거 하고 있으며, 경북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와 대구 근교에 교리공의 증손 득효(得孝) 남재공(南齋公)의 후예 4백여호가 살고 있는데, 근 4백여년 동안 세거하고 있다. 제2남 효달(孝達) 생원공(生員公)의 후손은 경기도 포천, 가평 일대와 전남 순천, 광양에 수백여호가 세거하고 있으며, 제 3남 제달(悌達) 사정공(司正公)의 후손은 충북 괴산, 이천, 음성 등지에 장파(長派)가 세거하고 있으며, 포천군 일동면 길명리를 중심으로 근교에 수십여호씩 부락을 형성하고 있고, 그외 일부는 개성, 장단, 청주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제 4남 윤달(允達) 첨정공(僉正公)의 후손은 충남 대흥, 천안, 부여군 홍산, 전남영암 등지에 세거 하고 있으며, 제 5남 신달(信達) 통덕랑(通德郞)의 후손은 포천군 신북면 기지리와 영중면 금주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포천군 각 읍면 일대에 수백여호가 5백여년 동안 세거하고 있다. 경안공의 여섯째아들 제(濟) 사직공(司直公)의 후손은 황해도 연백에 세거하고 있고, 일곱째 아들 동(凍) 통덕랑(通德郞)의 후손은 강화 지역에 수십여호가 살고 있다.
서평군의 5남 천록(天祿) 판한성사(判漢城事)공의 후손은 평북 초산, 벽동, 강계 등지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